아버지는 세상이 벗긴 자리에 신을 신기고,
세상에서 가장 가깝고 사랑하는 관계는 부모와 자식 간일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오해도 깊고, 상처도 많다. 부모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들 또한 자신을 낳고 길러준 부모와 잘 지내고 싶어 한다. 그런데도 왜 이토록 관계가 어렵고, 마음이 멀어질까? 몸은 함께 살아가지만, 마음속에는 원망과 불평, 상처가 켜켜이 쌓여 진심 어린 소통이 이뤄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드라마와 책, 그림 속 아버지를 통해 그 해답을 들여다보자.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요즘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가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10명 중 7명이 하루에 한 시간도 가족과 대화를 하지 못하는 오늘날, ‘무척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뜻의 이 드라마는, 우리가 잊고 지냈던 부모의 마음을 돌아보게 하는 시간이 되고 있다. 주인공 애순과 관식의 속 깊은 사랑이 가슴을 찡하게 하지만, 부모가 된 그들의 자식을 향한 마음은 더욱 뭉클하다. 딸을 공부시키기 위해 아끼던 집을 팔고, 사기를 당한 아들을 위해 생계 수단이던 배를 내어주는 아버지. 그런 관식의 모습은 자식을 향한 아버지의 헌신과 사랑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하지만 자식들은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아버지를 원망하고, 서운함을 토로한다. 그렇다면 이처럼 멀어진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언제 회복될 수 있을까?
그 시작은 자식들이 아버지의 마음을 정확히 알게 되는 순간이다. 한평생 일만 하던 아버지 관식이 다발성 골수종 진단을 받고 입원하게 되면서, 딸 금명은 어머니 대신 병수발을 하며 아버지의 지난 삶을 듣게 된다. 그동안 본인이 보낸 용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고이 모아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금명은 비로소 아버지의 깊은 마음을 마주하게 되고 눈물을 흘린다. 아들 은명 역시 사기 혐의로 유치장에 갇히면서 부모에게 쌓인 감정을 털어놓는다. 늘 성적 좋고 인성도 바른 누나 금명에게 밀려 2등 자식으로 살아온 설움, 그리고 그 모든 행동이 결국은 아버지의 관심을 받고 싶어서였다는 고백이다. 그의 이야기를 들은 아버지는 말없이 배를 팔고, 어떤 모습이든 아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준다. 그제야 은명은 아버지의 사랑을 온전히 느끼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영화의 원작, 크게 될 놈
이번에는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된 《크게 될 놈》이라는 책 속 주인공 김기성을 살펴보자. 어린 시절, 그는 술에 취해 가족을 괴롭히는 아버지를 몹시 싫어했다. ‘절대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아버지와 눈도 마주치지 않고 지냈다. 그러던 그에게도 아버지의 진심을 마주한 순간이 찾아왔다.
강도와 살인 혐의로 수감되어 사형선고를 받은 뒤, 면회 온 아버지와의 만남에서였다. 검사실 복도에서 그는 처음으로 아버지의 속마음을 들여다보게 된다. 고무신을 신고, 체면조차 차리지 않은 채 죄가 있다면 내가 죄인이라며, 아들의 목숨을 살려달라고 통곡하는 아버지의 모습. 그 순간 그는 깨달았다. ‘그동안 속았구나. 겉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구나.’ 내가 돈을 못 벌고, 잘못 살아서 아들이 죄를 지은 것이라며 모든 책임을 스스로 짊어지려는 아버지의 눈물 앞에서, 그는 23년 만에 아버지의 진짜 마음을 만난 것이다. 그날 경찰 호송차 안에서 그는 아버지에게 편지를 쓴다.
‘아버지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그동안 아버지의 마음을 몰랐습니다.’

하지만 그날 이후 아버지의 삶이 극적으로 변한 것은 아니었다. 문제들이 모두 해결된 것도, 소통이 원활해진 것도 아니었다. 외형적으로 달라진 것은 전혀 없었지만, 그의 눈에 비친 아버지는 달라져 있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가 두 명의 새어머니를 호적에 올리는 황당한 일까지 있었지만 그는 원망하지 않았다. 자신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을 만난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재소자로 살아가며 자신을 깊이 돌아보게 되었다. 비록 아버지는 술에 취해 가족을 힘들게 했지만, 도둑질이나 살인 같은 죄를 짓지는 않았다.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오히려 자신이 더 큰 죄를 저지른 존재임을 깨달은 것이다. 그 순간, 그는 더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더는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렘브란트의 그림, 돌아온 탕자
네덜란드의 화가 렘브란트의 작품 ‘돌아온 탕자’에는 한 아버지와 두 아들이 등장한다. 신약성경 누가복음 15장을 바탕으로 그린 이 그림은,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마음과 관계가 어떻게 회복되는지를 깊이 있게 보여준다.
큰아들은 아버지의 뜻을 어기지 않고 성실히 살아온 인물이다. 반면, 둘째 아들은 자신의 몫의 재산을 요구해 집을 떠났고, 결국 모든 것을 잃고 돌아온다. 그는 품꾼으로라도 살아가겠다는 심정이었지만, 아버지는 그런 아들을 반갑게 맞이하며 살진 송아지를 잡고, 손에 가락지를 끼워주고, 새 신을 신긴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온 아들을 위한 기쁨의 잔치가 벌어진다.
하지만 큰아들은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아버지를 원망한다. 평생 아버지를 섬기며 실수 없이 살아온 자신보다, 허랑방탕했던 동생이 더 큰 환영을 받는 현실이 좀처럼 납득되지 않는다. 그는 아버지를 따르는 듯하지만, 정작 아버지의 진심은 헤아리지 못한 것이다. 결국 갈등이 생기고, 문제는 깊어진다.

아버지는 변함없이 같은 사랑을 주지만, 아들의 마음에 따라 관계의 깊이는 달라진다. 함께 살아도 마음이 통하지 않으면 원망과 오해는 피할 수 없다. “내 것이 다 네 것”이라 말하는 아버지의 진심도, 마음을 모르는 큰아들에게는 닿지 않는다. 이 작품은 결국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것의 중요함을 말하고 있다.
한편, 둘째 아들은 모든 것을 잃고서야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고 진심으로 아버지를 떠올린다. 돼지우리에서 굶주림에 시달리며, 자신을 키워주고 사랑을 베푼 아버지의 마음을 비로소 이해하게 된 것이다. 그는 품꾼으로 살아도 좋다는 마음으로 돌아오지만, 아버지는 아낌없는 사랑으로 그를 맞이한다. 이 순간은 둘째 아들에게 영원히 잊히지 않을 감동의 기억이 되었을 것이다. 이후 어떤 일이 닥쳐도 그는 아버지의 사랑을 기억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갈 것이다.
부모의 마음을 만났을 때
자식을 사랑하고 아낌없이 주고 싶어 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자식들 또한 자신을 낳아주고 길러준 부모와 잘 지내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마음이 통하지 않으면 오히려 원수처럼 지낼 수밖에 없다. 어떤 이는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아들과 딸처럼, 자신의 불행을 부모의 가난과 잘못으로 탓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어떤 일이 일어나도 서로를 원망하고 상처를 주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그렇다면 진정한 관계의 회복은 어디서 시작되는 걸까? 부모의 마음을 만나는 순간부터다. 책 속 김기성은 아버지를 원망하며 살아왔지만, 아버지의 진심을 알고 나서는 더 이상 미워할 수 없었다. 오히려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던 자신이 아버지보다 허물이 많은 사람임을 깨닫고 나서는, 어떤 것도 문제로 느끼지 않았다.
우리는 그동안 부모의 겉모습만 보아왔던 것은 아닐까? 부모의 깊은 마음을 느끼는 순간, 누구라도 ‘폭싹 속았수다’라는 진심 어린 고백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자식들이 인생의 실패와 고난을 경험하게 될 때, 자연스럽게 부모를 떠올리게 된다.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던 말이 무색하게, 삶의 고통 속에서 자신의 연약함을 깨달을 때 비로소 우리는 ‘폭싹 속았수다’ 다시 말해 ‘무척 수고하셨습니다’라고 진심 어린 표현을 건네게 될 것이다.

글쓴이 심0자
심리상담가이자 한국독서개발연구원장이다. 학교, 지자체, 교육청 연수원, 대학교 교육개발원 등에서 심리지도, 부모교육, 인문학, 독서교육, 진로지도 강의를 펼쳐왔다. 현재 심리상담의 일환인 문학치료를 더 심층적으로 연구하려고 박사과정을 하는 중이다. 공저로 《마음의 DNA를 바꿔라》가 있다.